쓰레기로 향수를 만든다고요?
이제껏 향수는 아름답고 향기롭고 신선한 재료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레기로 향수를 만든다고?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때문이다. 지속 가능성은 패션과 뷰티뿐 아니라 모든 산업의 가장 큰 화두다. 많은 브랜드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환경친화적인 방법을 고안 중이다. 그간 비건 뷰티, 그린 뷰티, 블루 뷰티, 클린 뷰티까지 다양한 ‘뷰티’가 등장한 건 입이 아플 정도. 대부분 제작 및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오염 문제나 패키지 문제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런데 지금 말하려는 건 조금 다른 개념의 지속 가능성이다. 공해에서 나온 알코올, 목재에서 나온 톱밥처럼 버려지는 것의 재활용에 대한 거다. ‘향수’로서 말이다. 무엇이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향수는 ‘향수’라는 데 있다. 향수의 목적은 오로지 ‘향’ 그 자체로, 향을 부여함으로써 후각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지속 가능한 향수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러쉬는 향수를 만들 때 필요한 원료의 생산지를 직접 찾아가 친환경 농법을 장려하고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윤리적 재료 구매’ 방식을 고수해왔다. 클린은 공정한 방식으로 수확하고 추출된 원료를 바탕으로 친환경 향수 컬렉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 모로코의 저소득 여성을 돕는 사나 자딘(Sana Jardin)이나 비영리 환경 단체, 아마존 부족을 지원하며 원료를 공급받는 아니마 빈치(Anima Vinci) 등이 있다. 의식 있는 소비가 늘며 향수 한 병에도 윤리가 담기는 셈.
향수는 특정 향을 내기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다. 모든 합성 물질이 해로운 건 아니지만, 몇몇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몸은 물론 환경에도 좋지 않다. 미국 해양대기청에 따르면, 향수에서 나온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자동차에서 배출된 가스만큼 많은 오염물질을 대기로 방출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특정 식물로 만든 향의 선호와 수요가 늘어나며 해당 식물이 과잉 수확되거나 멸종위기에 처하는 등 생태계를 위협한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재활용이다.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재료나 폐기물, 버려질 쓰레기를 사용해 향수를 만드는 거다. 몇몇 조향사가 업사이클링을 통한 ‘느린 향기’에 초점을 맞추어 시작한 일이다. 향을 위해 증류하거나 추출하는 과정이 안전하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대부분은 모두 재활용될 수 있다. 로즈 오일 0.4kg을 얻기 위해서는 453kg이 넘는 장미 꽃잎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 쓴 식물성 비료를 말려서 증류하면 장미와 비슷한 향이 생산된다. 이렇게 하면 향을 위해 버려지는 장미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오렌지나 레몬 껍질에서 시트러스 향을 추출하거나, 가구를 만들면서 날리는 목재의 먼지에서 시더우드 향을 얻기도 한다. 그 예로 이세이 미야케의 드롭 디세이 EDP는 플라스틱의 재생 가능한 탄소 소재를 사용해 얻은 바닐라 추출물과 캐비닛을 만들고 남은 톱밥을 6시간 넘게 증류해 나온 시더우드 향을 더했다. 엘리스 브루클린의 솔트 EDP는 톱밥에서 추출한 바닷소금, 머스크 향과 인도 종교의식에서 사용한 재스민으로 완성했다. 업사이클링으로 만든 최초의 럭셔리 향수 에따 리브르 도랑쥬의 아이엠트래시(I Am Trash)는 식품 산업 폐기물에서 나온 사과와 버려진 샌들우드 조각으로 만들었다.
쓰레기로 만든 향수를 소개하면 “냄새가 좋을까?” 또는 “더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반 향수와 마찬가지로 향기롭고 상쾌하다. 지속 가능성에 있어 재활용이 획기적 아이디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버려지는 재료를 이용하니 폐기물 양을 직접적으로 줄일 뿐 아니라 새로운 자원도 절약되며, 농사를 짓고 수확한 천연자원의 가용성이 더욱 커진다. 재활용에 쓰인 재료는 용도가 바뀌면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향수 산업의 핵심 성분에 대한 자원의 부담도 줄어든다. 진부한 말이지만 재활용 향수는 자연을 존중하고 파괴하지 않는 철학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 자연은 단순히 환경만 위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삶으로도 이어진다. 미래에는 자원이 고갈되고 쓰레기가 가득한 바다에서 살 거라고? 미래가 아니다. 미래는 끊임없는 현실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지를.
일러스트 신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