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온 슈퍼밴드2 데미안

<슈퍼밴드2>를 통해 이제 막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데미안의 진짜 스토리가 시작됐다.

슈퍼밴드 데미안의 뷰티블 화보 이미지
재킷, 팬츠 모두 이에이, 티셔츠 마크 제이콥스, 볼캡 스투시, 스니커즈 컨버스.

JTBC <슈퍼밴드2>에서 저스틴 비버의 ‘Holy’로 첫 무대에 섰어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무대 전부터 내려올 때까지 말 그대로 공황 상태였어요. 아무 기억이 없어요.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제 방에 혼자 앉아서 노래할 때는 그렇게 안 하니까. 무대에서는 노래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동선, 앞에 계신 심사위원분들, 카메라까지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도 신경을 못 썼어요. 심지어 노래까지도요. 방송을 봤는데 뻣뻣하게 굳어 있는 제 모습이 정말 말도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제 콘서트에서 첫 무대를 해도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두 번째 엑스 앰버서더스의 ‘Boom’, 세 번째 뮤즈의 ‘Time Is Running Out’ 무대에서는 긴장을 훨씬 덜한 것처럼 보였어요. ‘Boom’
무대에서는 편곡적으로도 제가 많이 참여했고, 저희 팀에 악기가 기타 한 명밖에 없어서 저도 피아노랑 보코더를 연주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덜 떨었어요. 보컬 파트도 반으로 줄었고 악기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퍼포먼스적으로 액션을 취할 것이 꽤 있었는데, 방송으로 무대를 보니 발성이라든지 보컬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세 번째 무대는 굉장히 떨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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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팬츠 모두 이에이, 티셔츠 마크 제이콥스, 볼캡 스투시, 스니커즈 컨버스.

개인적으로 세 번째 무대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데미안이 “Our Time Is Running Out”이라는 가사를 외치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요.
그런데 악플이 너무 많아요.(웃음) 제가 시청자분들이 기대한 목소리와는 거리가 좀 있나 봐요. 사실 안 좋은 얘기 같은 건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어머니가 자꾸 전해주셔요. 그 무대는 부담이 특히 많이 됐어요. 제 목소리로 즐거움 이상의 것을 드려야 하잖아요. 두 번째 무대처럼 신선함이나 충격을 드릴 자신은 있었는데,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저 자신에 대한 의심도 컸어요. 그 곡이 제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하고요.

캐나다 유학생 시절 가장 많이 들은 노래라고요?
유학생 시절 방에 혼자 앉아 하루 종일 라디오를 켜놓고 노래를 들었어요. 그때 가장 자주 듣던 노래 중 하나예요. 이때가 음악적으로도 제게 충격적인 시기였어요. 한국 노래나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던 컨트리류 팝송만 듣다가 그곳에서 록, 펑크 장르에 눈을 뜨게 됐어요. 에이브릴 라빈, 폴 아웃 보이, 엘르가든 같은 뮤지션들이 활동하던 시기였거든요. 사춘기 감성에도 잘 맞았고요.

세 번째 무대를 마치고 눈물을 보였어요. 그 눈물은 어떤 의미였어요?
절망이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꺼내놓고 실수 없이 최선의 무대를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졌잖아요. 앞으로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원래 추구하는 음악적 스타일은 경연에 잘 맞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 노래는 프로그램의 스타일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방송을 보니 생각보다 실수를 많이 했고, 내러티브를 신경 쓰느라 놓친 부분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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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로에베, 티셔츠 시빌리스트 by 슈프림, 데님 팬츠 JW 앤더슨, 비니 베드윈 앤 하트브레이커즈, 네크리스 락킹에이지.

원래 감정 표현에 솔직한 편인가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어요. 표현 방식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하는 편인데, 표현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에요. 원래는 굳이 표현을 해야 하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사람처럼 보이려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놔야 하더라고요. 제가 가만히 입 닫고 있으면 좀 새침해 보이는 스타일이어서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솔직한 건 제가 갖고 싶은 인상을 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에요.

어떤 인상을 주고 싶은데요?
다가가기 편한 사람? 거리감 느껴진다는 말을 정말 싫어해요. 어려워 보이는 사람도 상대방이 다가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차갑게 생겼거나 원래 말수가 적다거나 어쩌다 보니 그런 건데 저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슈퍼밴드2> 초반 인터뷰에서 “가장 친한 음악 친구를 만들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 목표는 이룬 것 같나요?
가장 친해질 수도 있는 친구를 많이 만났어요. 발로랑은 한 팀에서 무대를 함께 꾸몄는데, 음악적으로는 물론 바이브도 잘 맞더라고요. 함께할 작업을 구상 중이에요. 발로는 진심인지 모르겠지만.(웃음) 그리고 기타의 정석훈 씨나 드럼의 성배, 문.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예요. 그저께도 성배랑 문이랑 같이 만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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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톱, 코듀로이 팬츠, 스니커즈 모두 로에베.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고 그때까지 수많은 노력을 했을 거예요. 그 모든 걸 포기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기억해요?
냄비 안의 개구리 같았어요. 뭔지 아시죠?(웃음) 뜨거운 물에 휙 넣었으면 튕겨 나왔을 텐데, 온도가 올라가는지도 모르고 계속 헤엄친 거였죠. 제가 생각하는 아티스트라는 모습이 눈앞의 신기루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상태였어요. ‘6개월만 더 하면 진짜 될 것 같은데’를 반복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이젠 신기루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 되었는데요?
아니요. 아직도 신기루고, 매번 속아요. 음악적으로 이런 부분만 좀 더 개선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부족한 점이 보이고 꾸준히 계속 그런 상태예요. 여러 번 속았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거라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죠.

먼 미래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여요.
먼 미래를 생각하는 건 정말 비효율적이에요. 스물두 살 때까지는 그랬는데 지금은 제가 그리던 미래와는 전혀 다르게 음악을 하고 있으니까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사회도 너무 빨리 달라지고. 10년 후엔 아티스트라는 게 AI로 대체돼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고요.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계획을 수정하려면 단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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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톱 모스키노, 스니커즈 반스, 데님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미안으로 데뷔한 지는 2년 차, 음악을 한 지는 7년 차가 됐어요. 처음 사운드클라우드에 음악을 올리던 ‘Sohn Light’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어떤 경험치가 쌓였나요?
그때는 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썼다면 지금은 좀 더 정리된 상태예요. 음악을 만들 때 고려하는 것도 많아졌고요.

창작 활동이라는 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지와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스타일로 풀어낼 것인지가 있잖아요. 데미안은 ‘무엇’과 ‘어떻게’ 중 어떤 것에 좀 더 관심이 많나요?
곡마다 밸런스가 달라지는데, 요즘은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훨씬 많이 고민해요. 처음에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추고 나오는 대로 부르는 게 진정성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어느 정도 성숙해지면 무엇을 전할지는 다시 고민할 문제예요.

대화할 때와 노래할 때 목소리가 굉장히 달라요.
사실 음악할 때가 진짜 제 톤이고 말할 때는 목소리를 깔고 하는 편이에요. 후두를 내리고 말하는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서 말하다가 노래를 하려면 목소리가 바로 바뀌지 않거든요. (하이 톤으로) 노래를 위해 말하는 목소리 톤을 포기하고!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가벼워 보이잖아요.

‘모던 싱어송라이터’라고 본인을 소개해요. 데미안이 생각하는 모던 싱어송라이터는 어떤 건가요?
싱어송라이터 하면 1980년대나 1990년대 포크송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지금은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적인 스펙트럼도 넓어졌고, 음악을 전하는 매개체도 다양해졌어요. 노래만 만드는 게 아니라 앨범의 콘셉트나 내러티브의 전체적인 맥락을 전달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모던 싱어송라이터예요. 비주얼적인 측면을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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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톱 모스키노, 스니커즈 반스, 데님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럼 본인의 비주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잘생긴 외모 때문에 예술성이 비교적 저평가받는 아티스트가 있잖아요.
‘내 노래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한 적은 있어요.(웃음) 그런데 다 장단점이 있잖아요.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제게 관심을 가져줄 수도 있는 거고요. 그리고 애초에 제가 추구하는 음악이 ‘음악성’보다는 ‘대중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저스틴 비버도 음악적으로 굉장한 능력을 갖췄는데, 초반에는 외적인 것들로 주로 주목을 받았잖아요.

활동명을 소설 <데미안>에서 영감 받아 만들었다고요. 책을 자주 읽어요?
사실 책을 그렇게 자주 읽지는 않아요. 사회과학 책에는 관심이 있었는데, 소설은 원체 안 읽었거든요. 사실이 아닌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에 왜 제 감정을 쏟아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낀 것 같아요. 음악을 시작하면서 반성 중이에요. 사실이든 아니든, 작가가 소설을 통해 의도한 바가 제 생각과 같든 다르든, 그 이야기를 읽고 듣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더라고요.

올해 말에 나올 싱글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지금 준비하는 싱글은 이전 것들보다 사람들이 공감하기 쉽게 만들었어요. 가사도 이전에는 발음 기호에 신경 썼다면 이번엔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곡을 쓸 때 제 과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그때 느낀 감정을 최대한 공감하기 쉬운 말들로 풀어내려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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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팬츠 모두 에잇 by 육스, 티셔츠 캘빈클라인 진, 플립플롭 버켄스탁, 네크리스 베루툼.

그럼 데미안은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요?
음, 지속 가능한 아티스트요. 한 색깔로 가능한 일은 아니고 때가 오면 현명하게 색을 바꾸는 거죠.

말하자면 언제나 현대적인 아티스트인 거죠?
그 말 좋은데요? 현대적이라는 뜻은 계속 바뀌는데, 거기에 맞춰서 언제나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죠. 그렇게 제 즐거운 음악 생활을 오래오래 이어가는 게 꿈이에요.

마지막으로 잡지 이름이 <뷰티쁠>이라서 물어볼게요. 최근에 아름답다고 느낀 게 있나요?
<슈퍼밴드2>에 출연하며 악기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7년 동안 비트 음악을 하면서 악기 연주자는 한 명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한꺼번에 40명을 만난 거예요. 연주하는 모습은 당연히 아름답고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드럼 치는 친구는 리듬적으로, 피아노 치는 친구는 화성적으로요. 그렇게 다른 세계를 접하고 나니까 제가 한없이 작아졌어요. 지구를 52개 동시에 발견하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인류가 하나가 아니었어? 이런 느낌으로요?(웃음)
딱 그거예요. “내가 발전한 문명인 줄 알았는데 몹시 아니구나. 이건 수많은 문명 발전 방식 중 하나였구나.” 그래서 되게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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