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환경 시대의 지속 가능한 포장

이제 화장품 패키지도 필환경 시대다.

지속 가능 화장품 패키지의 변화

아침에 일어나 대나무 칫솔로 양치를, 비누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 출근길 가방 속엔 늘텀블러가 있다. 점심시간마다 카페에서 영수증과 빨대는 거절하고 챙겨온 텀블러에 음료만 받는다. 무엇이든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인지 꼼꼼히 따져 구입하고 다 쓴 후 깨끗이 씻어 같은 소재끼리 분해해 분리수거하는 것은 기본. 병뚜껑은 한 달에 한 번 색깔별로 모아 자주 가는 망원동 제로 웨이스트 숍 알맹상점에서 치약 짜개나 메모 부착용 자석 등 재활용 제품으로 바꾼다. 오늘은 모아둔 음료 캔과 페트병을 처리하는 날. 자판기처럼 생긴 순환 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에 캔과 페트병을 넣으면 하나당 10원씩 적립되는데, 이 로봇을 통해 모인 폐기물은 그냥 분리수거했을 때보다 고품질의 재활용 원료로 다시 생산된다. 돈도 벌고 환경에도 일조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이건 눈떠서부터 감을 때까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한 광고 회사 기획자 A씨의 일상이다.

제로 웨이스트부터 비건 뷰티까지, 지금 뷰티 업계에서도 지구와 환경을 위하는 지속 가능성은 가장 중요한 화두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미닝아웃’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다. 이들은 친환경 제품에는 ‘돈쭐(돈으로 혼쭐을 낸다는 신조어)’을 내고,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브랜드에는 강력하게 ‘혼쭐’을 낸다. 최근 이니스프리의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에디션이 논란이 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한 소비자가 SNS에 “종이 보틀을 잘라보니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 있었다”며 올린 사진이 발단이 되었다. 브랜드가 실질적인 친환경 경영과는 거리가 있지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한 것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친 것. 하지만 환경에 관여도가 높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니스프리를 옹호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겉면에 종이 라벨을 씌운 플라스틱 저감 제품을 통해 기존 제품 대비 51.8%의 플라스틱을 절감했으며, 분리배출 방법까지 쓰여 있는데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의 애꿎은 지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리고 애초 피부에 직접 닿는 화장품을 변질 없이, 또 새지 않게 종이에만 담아내는 건 아직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이니스프리는 환경적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전 2003년부터 공병 수거 캠페인을 시작해 이를 아모레퍼시픽 그룹 전체로 확대하게 한 장본인이며, 플라스틱 절감에 가장 앞장선 브랜드 중 하나다. 그들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환경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점이 적지 않다는 거다. 필환경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화장품은 성분을 넘어 패키지도 친환경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KPRC)의 연구에 따르면, 아직까지 국내에서 생산되는 화장품 용기의 90% 이상은 재활용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 기업만 비판할 일이 아니라는 것. 환경보호를 내세우며 여러 브랜드에서 우후죽순으로 선보이는 플라스틱의 대체재 생분해성 플라스틱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조절된 폐기 시설에서만 빨리 분해되는 탓에 그냥 버려졌을 때는 일반 플라스틱과 별 차이가 없을 수 있고, 분해되더라도 작은 파편 조각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환경에 보탬이 되고자 원가 절감 대신 비용을 더 들여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선택하고, 그 사실을 홍보한 브랜드를 ‘그린 워싱’이라 매도할 일인가? 당연히 아니다. 실천적 한계로 인해 소비자의 발전된 의식을 따라잡기는 어렵지만, 브랜드의 환경을 위한 패키징 노력이 발전하고 있다는것 또한 사실이다. 작게는 플라스틱 패키지의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분리하기 쉽게 만드는 것부터 패키지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샴푸 바 같은 네이키드 제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론칭한 자라 뷰티와 타깃층이 다른 에르메스 뷰티, 라프레리는 버리지 않고 계속 재활용할 수 있는 리필형 패키지 제품을 선보였다. 더바디샵은 전 세계 400여 매장에 리필 스테이션을 설치했고, 다 쓴 화장품 공병을 매장에서 수거하고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은 이니스프리부터 맥과 러쉬까지 다양한 브랜드에서 실천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대체할 소재 개발을 위한 노력도 계속되는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3월 최대 3년간 화장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종이 튜브 용기 개발에 성공했다.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 평가 제도’에서 예외였던 화장품 업계가 ‘화장품 어택’ 같은 소비자의 반발로 결국 재활용 등급을 제품에 표시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지 않기 위한 브랜드의 고민과 노력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거다.

중요한 건 기업들의 이런 실천이 계속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 ‘플라스틱 대신 종이’ ‘바이오 플라스틱이 답’처럼 기계적으로만 변화를 받아들일 게 아니라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볼 줄알아야 한다. 이런 과도기에 생길 수 있는 에피소드가 기업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환경에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좀 더 똑똑해져야 한다. 아는 만큼, 행동하는 만큼 지구를 지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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