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만드는 패션하우스
앞다투어 코스메틱 라인을 론칭하는 패션 회사들의 딴눈 팔기가 계속되고 있다.
립스틱 효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는 ‘경제적 불황기에 립스틱처럼 가격이 저렴한 사치품의 판매량이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193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기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립스틱 매출은 증가했다.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긴축 재정 상태에서도 저렴한 사치품, 즉 코스메틱 제품에 대한 구매를 크게 줄이지 않으며 오히려 더 구입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고 있는 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비심리가 급락한 상황에서도 코스메틱 시장의 타격은 크지 않았다. 글로벌 리서치 기업 유로모니터의 시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코스메틱 산업은 전 세계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2020년에는 전년 대비 0.8% 하락했지만, 이미 디지털 유통 채널과 라이브 커머스의 활용 등 온라인 커머스 시장이 탄탄하게 형성된 뷰티 시장은 다른 소비재 시장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 전년 대비 수치가 3.2% 하락한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의 패션 시장 규모 조사와 비교해도 수치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일까. 코로나로 바깥 출입 횟수가 줄어들면서 직격탄을 맞은 패션 브랜드들이 뷰티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작년부터 구찌와 에르메스가 연이어 뷰티 라인을 론칭하며 화제를 일으켰고, 브랜드의 철학과 취향을 그대로 담은 패키지와 제품 구성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오는 10월, 에르메스는 네일 폴리시와 브러시를 포함해 도구 및 액세서리를 풀 구성한 네일 컬렉션까지 제품군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런 흐름은 올해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130여 가지 컬러의 메이크업 제품군을 선보이며, 전 세계에서 성공적인 론칭을 마친 자라 뷰티에 이어 같은 모회사 인디텍스 소속 브랜드 마시모두띠도 보디 컬렉션을 출시했다. 미니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뉴트럴 컬러의 패키지와 트렌드를 반영한 중성적인 향으로 ‘코덕’ 사이에서 출시 전부터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1978년 론칭한 향수 제품을 보유한 발렌티노 역시 첫 메이크업 라인을 론칭했다. 메종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는 ‘모든 성별과 연령, 문화에 개방된 쿠튀르 메이크업’을 표방하며 50가지 컬러의 립스틱과 40가지 셰이드의 파운데이션을 비롯해 다양한 메이크업 제품군을 선보였다. 하우스를 상징하는 ‘발렌티노 레드’ 컬러와 금장 로고 장식이 더해진 제품은 여느 패션 아이템 못지않게 스타일리시한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타임, 마인, 시스템 등 브랜드를 보유한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 전문 기업 한섬이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오에라를 론칭했다. 한섬이 패션 외의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7년 창사 이후 처음이다. 이 밖에도 향수와 스킨케어, 메이크업 제품까지 하이엔드 란제리 감성을 녹여낸 라펠라 뷰티, 브랜드 시그너처인 아찔한 킬힐 실루엣의 립스틱을 앞세워 하반기 국내 론칭을 앞둔 크리스찬 루부탱 뷰티까지. 패션 브랜드의 코스메틱 진출 경쟁이 치열하다.
모두 패션 브랜드답게 패키지부터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 컬렉션을 구성한 것이 특징. 패션과 뷰티 산업은 모두 이미지를 소비하는 경향이 큰 산업이다. 오에라의 박나영 책임 역시 “패션과 화장품 사업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차별화된 제품 개발 능력과 같은 핵심 경쟁 요소가 비슷하다. 제품 패키지부터 오프라인 매장까지 한섬이 그동안 쌓아왔던 세련된 감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우스의 이름을 그대로 내건 뷰티 라인을 론칭했을 때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이미 확보한 상태라는 것 또한 장점이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뷰티 시장에 진출했을 때 실패율을 크게 줄일 수도 있다. 리한나의 펜티 뷰티, 카일리 제너의 카일리 코스메틱, 셀레나 고메즈의 레어 뷰티처럼 이미 하나의 브랜드화된 패션 아이콘인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이 뷰티 브랜드로 크게 성공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패션 브랜드에서 잇따라 화장품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장의 성장성 때문이다. 그간 화장품 시장은 레드오션이라고 인식돼왔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도 견고한 코스메틱 시장이기에 한동안 이 같은 한눈팔기는 계속될 듯하다.
일러스트 신미영
사진제공 www.shutterstock.com
도움말 박나영(오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