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스트림에서 정의하는 다양성
더 예뻐지기 위한 욕망을 사고팔던 뷰티 스트림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

‘There is No Beauty, only Beauties.’ 얼마 전 성공적인 론칭을 마친 자라 뷰티의 세계관이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은 없고 오직 다양한 아름다움들만 있을 뿐’이라는 이 말은 지금 패션과 뷰티 스트림 전반을 관통한다. 큰 키와 마른 체형, 그리고 백인이 필수 조건이던 하이패션의 런웨이 위 사정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17 F/W 시즌에 백발의 잔 드 빌뇌브, 베네디타 바지니, 바바라 마스 같은 시니어 모델들이 드리스 반 노튼, 시몬 로샤, 돌체앤가바나 쇼에 캐스팅되고 히잡을 두른 소말리아계 미국인 모델 할리마 아덴이 막스마라 쇼에 등장한 것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불과 4년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시니어 모델은 전성기를 맞았고, 이젠 캣워크에서 어렵지 않게 유색 인종은 물론 플러스 사이즈, 트랜스젠더 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예는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패션쇼’라는 수식어와 함께 수많은 톱 모델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던 쇼는 사라졌고, 브랜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엔젤 제도’도 폐지됐다. 그리고 지난 6월 미국 여자 축구 대표팀의 동성애자 선수 메건 러피노, 플러스 사이즈 모델 팔로마 엘세서, 수단 난민 출신 모델 아두트 아케치 등 배경과 직업, 인종이 다른 모델 7명을 새로운 얼굴로 발탁한 것. 평균 신장 177.8cm, 체중 50.8kg, 허리둘레 24inch라는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진 ‘엔젤’이 추앙받는 시대가 아니란 거다.
이처럼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양상은 모델 선택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2021 F/W 시즌 루이 비통부터 버버리, JW 앤더슨까지 런웨이 위에는 치마와 원피스를 입은 남자 모델이 쏟아져 나왔다. 개개인의 취향과 개성도 존중받는 시대가 온 거다. 이와 함께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한 차별이 깊숙이 자리 잡은 뷰티 스트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개개인의 가치 추구를 가장 중요시하는 MZ세대에게 나이나 인종, 성별, 취향의 차이는 존중해야 할 개인의 선택이다. 또 이들에게 깨끗한 피부, 큰 눈, 긴 속눈썹, 뾰족한 코로 통칭되는 아름다움의 정의도 새롭게 봐야 할 옛것일 뿐이다. 이런 소비자의 변화에 발맞춰 요즘 브랜드 대부분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 제품 개발부터 광고와 마케팅, 고용 과정에 이르기까지 실천 방법도 다양하다. 어떤 피부 톤도 사용할 수 있게 무려 56개 셰이드의 파운데이션을 판매하는 에스티 로더, 모든 제품에 여성과 남성 모델 모두를 활용한 룩을 보여주는 라카, 게이 커플을 내세운 광고를 선보이고 채용 시 성소수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러쉬, 누르스름한 치아와 비뚤어진 치열을 활짝 드러내며 웃는 모델의 캠페인 컷을 공개한 구찌 뷰티까지. 기존 미의 기준이나 사회적 통념을 거부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시선에서 개개인을 존중한다.
외모 지상주의적인 시선으로 여성에게 가장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던 뷰티 업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른바 다양성의 시대가 열리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 이런 현상을 단순히 비주류를 포용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각자의 다름을 어떤 정해진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주류와 비주류의 기준과 경계 자체를 없애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미의 기준을 두고 그에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지는 않는지. ‘예쁘다’는 말과 ‘나답다’는 말이 동일시되는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사진 김태선
모델 배유진 서유진
헤어 이일중(서유진) 이영재(배유진)
메이크업 서아름(서유진) 황희정(배유진)
스타일리스트 노경언
참고 도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웅진지식하우스, 러네이 엥겔른)
어시스턴트 안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