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정의하는 새로운 키워드, 공간
공간에서 영감을 받은 신상 향수 4가지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의 세탁소
1985년 개봉한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두 청년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인종차별과 계급주의, 동성애 등 당시 영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화면에 잘 녹여낸 영화다. 지금은 은퇴한 영국의 명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젊은 모습을 볼 수있어 더 특별한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의 주된 배경은 세탁소. 세탁소를 생각하면 다리미가 뿜어내는 스팀과 깨끗한 빨래에서 풍기는 비누 냄새, 새벽의 찬 공기가 먼저 떠오른다. 차가운 동시에 따뜻한, 차분하지만 분주한 세탁소의 분위기. 이를 향으로 재해석한 것이 바로 스팀 글로스다. 두 주인공이 울고 웃고 사랑했던 영화 속 세탁소에서는 꼭 이런 향이 날 것만 같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침실
전설적 오프닝 신부터 창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신, 쏟아지는 빗속에서의 뜨거운 키스 신 등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장면이 있지만, 에디터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다름 아닌 잠을 자는 신. 오드리 헵번이 아이코닉한 터키색 안대를 끼고 고양이와 늦잠을 즐기는 장면 말이다. 곤히 잠든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바삭거리는 이불을 덮고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늦잠을 자는 주말 아침이 그리워진다. 힌스의 더 필로우도 그렇다. 리넨 커튼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아침 침실의 나른한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은 향답게 포근하고 부드러운 무드를 연출한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여유로운 주말, 조금은 게을러지고 싶은 날 찾게 되는 향이랄까?
<커피와 담배>의 카페
하루에도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카페는 도시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시끌벅적한 카페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중첩된다. 짐 자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는 짧은 이야기 11가지로 구성된 앤솔러지 형식을 취해 카페의 이런 특성을 잘 살려냈다. 도심 속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커피 브레이크의 출발점도 카페. 복잡한 도심의 작은 카페를 모티프로 해 탄생했다.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생활에 지쳤다면, 커피 브레이크의 묵직하지만 부드러운 향으로 바쁜 일상 속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기를.
<노팅힐>의 서점
세계적인 배우와 여행 전문 서점 대표인 평범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 <노팅힐>. 남자 주인공이 운영하는 작은 서점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어서일까? <노팅힐>은 서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다. 여기, 영화 속 서점을 빼닮은 향이 있다. 바로 카린 로이펠트의 죠지다. 실제로 카린 로이펠트가 연인과 함께 런던 뒷골목에 위치한 조용한 서점 뒤쪽의 작은 문을 열었을 때 맡은 향을 추억하며 완성했다고. 죠지의 향이 코끝을 스치는 순간,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종이 냄새와 낡은 나무 바닥 냄새가 뒤섞인 <노팅힐>의 작은 서점으로 순간 이동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진 김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