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뇌’부터 시작
지금껏 다이어트에 실패한 이유, ‘체중 설정값’ 때문이다.
찌고 빠지는 건 뇌가 정한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다이어트 이야기다. 미디어에 성공 사례가 등장하는 것은 일부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실패한다. 의지박약한 걸까? 영국의 비만 전문 의사 앤드루 젠킨슨은 “다이어트 실패의 원인이 ‘뇌’에 있다”고 말한다. 즉 모든 사람에게는 정해진 체중이 있으며 어떤 다이어트를 하든 결국 정해진 체중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에서 식욕이나 음식물 섭취의 큰 원인이 의지와 상관없는 유전적 요인이나 기타 무의식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밝혔다. 청주나비솔한의원 김희준 원장은 앤드루 젠킨슨의 의견을 소개하며, “무의식적인 사고란 우리가 일일이 심장박동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밥을 먹으면 알아서 위장이 움직이듯 지방을 얼마나 저장할지도 뇌가 알아서 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다프 파루오키 교수 역시 “체중은 의지만으로 조절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신체는 뭔가를 먹었을 때 음식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단위까지 분해해 소화한다. 소화된 음식물은 소장과 대장 등 창자에서부터 흡수된다. 흡수된 영양소는 가장 먼저 당의 형태로 간에 저장된 뒤 남은 에너지는 지방세포에 축적된다. 지방에는 약 30일 간 음식을 먹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가 모인다. 지방이 많이 쌓일수록 지방세포마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세포가 부풀어 올라 원래 크기보다 6배까지 커진다. 그러다 세포 내부에 더이상 에너지를 저장할 공간이 없으면 세포 수가 늘어난다. 지방세포는 평균 400억 개 정도이며, 1000억 개가 넘는 사람도 있다. 지방이 인체의 필수 요소이자 생명을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지방의 기능은 생명 유지를 위한 에너지 저장에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사용량도 조절한다. 비만의 단기 해결책으로 지방흡입술을 권유해 지방세포를 제거하면 효과가 잠시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몸이 사라진 지방세포를 채우려고 더 많은 세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몸의 결정
결국 뇌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느낀 지방 저장량이 곧 내 몸의 체중 설정값이 되는 셈. 다이어터에게는 가혹한 일이지만 우리가 음식 섭취량을 줄이면 신체는 대사량을 줄인다. 나아가 필요한 대사량을 만들기 위해 인슐린과 렙틴 등 호르몬 분비량을 맞춰 식욕을 조절하고 음식물 섭취를 강요한다. 다이어트 중 살이 빠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거나 살이 다시 찌는 것 같다면 체중 설정값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몸이 조절을 하고 있다는 것. 뇌는 우리가 자유의지로 음식을 덜먹는지, 식량이 부족해서 못 먹는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뇌의 관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뇌가 앞으로 저장할 에너지의 양을 계산할 때 쓰는 근거 데이터에 추가된다. 과거에 적은 열량으로 견뎌야 했던 경험이 많을수록 뇌는 무의식적으로 체중 설정값을 높게 책정한다.
안타깝게도 체중 설정값이 늘 건강한 체중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앤드루 젠킨스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인의 생활 방식과 식단 자체에 문제가 있다. 현재 우리가 하루 평균 섭취하는 열량은 30년 전보다 500kcal나 더많다. 음식은 상품이 되었고,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발전시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과식이 일상이 된 현대인의 신체는 기초대사량을 결정하는 교감신경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젠킨스가 저서에서 예로 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우리 몸의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이다. 육식 위주의 식생활이 이어지며 원래 오메가–3 비율이 높던 뇌 세포막에 오메가–6의 비중이 더 높아진것. 이로 인해 렙틴에 대한 민감도가 감소해 인체 대사가 둔화됐고, 식욕과 섭취 열량이 증가해 체중 설정값이 높아졌다고. 또 이런 변화는 세포막에 작용하는 인슐린의 영향을 약화시킨다. 세포의 인슐린 반응성이 떨어지면 인체 기능에 필요한 인슐린 양이 더 증가하고, 결국 체중 설정값이 다시 올라간다.
잘 먹고 잘 살고 잘 빼는 법
체중 설정값을 낮출 수는 없을까? 유일한 방법은 인체가 받는 환경 신호를 바꾸는 것이다. 기존에 알려진 살을 빼는 방식과 달리 스스로 잘 맞는 생활 습관을 들이고 외부 위험 요소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한다. 먼저 스스로 무엇을 먹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사 먹는 음식을 무조건 끊으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어떤 조리 과정을 거쳐 완성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생활 스트레스를 줄인다. 체중 설정값은 삶의 질과 반비례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체내 코르티솔 수치에 문제가 생긴다. 코르티솔은 인체가 판단하는 적정 체중의 크기를 좌우하는데, 뇌는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쉽게 쓰지 말라는 신호로 알아듣는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며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 원리는 간단하다. 잘 먹고 잘 자는 일상부터 지키는 것. 우리가 평생 허기와 싸울 수 없다는 걸 기억하라. 체중 감량이 아닌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진 김태선
도움말 김희준(청주나비솔한의원)
참조 <식욕의 과학>(앤드루 젠킨슨, 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