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래야 뗄 수 없는 비만과 우울증의 상관관계
살이 쪄서 우울한 걸까, 우울해서 살이 찌는 걸까.
몸과 뇌를 살찌우는 병
매년 이맘때면 늘 같은 다짐을 한다. 구체적인 숫자만 달라질 뿐 목표는 항상 ‘다이어트’다. 해마다 살찐 몸을 보며 반복하는 자신과의 약속은 스트레스의 주범이다.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도 스트레스 때문에 체중이 줄지 않는 건 그저 기분 탓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이 2가지가 연결돼 내 몸을 망치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영국에서 발표된 비만과 우울증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주목하자. 의학 전문 매체 <메디컬 익스프레스(Medical Xpress)>가 보도한 엑시터 대학 연구팀의 결과는 체질량지수(BMI)가 높을수록 우울증 위험이 커진다는 걸 보여준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병원의 연구 결과 역시 마찬가지. 체지방이 표준치 기준 10kg씩 증가할 때마다 우울증 위험은 17%씩 뛰었다. 우울증이 없던 사람도 체중이 증가한 뒤부터는 우울증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의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지방세포를 직접 생성할 수도 있다. ‘Adamts1’이라는 호르몬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으면 주변 줄기세포를 지방세포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이런 연구 결과를 발견하게 된 건 비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일까, 우울증으로 폭식이 동반되어서일까?
답은 하나다. 살이 쪄서 우울해지고, 우울해져서 살이 찌는 악순환의 고리다. 어떤 이들은 살이 찌는 데 항우울제 탓을 한다. 식욕의 변화는 우울증의 대표 증상 중 하나다. 우울증에 걸려 식욕이 줄고 체중이 감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울증으로 복용한 항우울제가 폭식을 조장했다는 사람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처방되는 항우울제는 약 15종이다. 이 중 어떤 약은 식욕을 증가시키지만 어떤 약은 감소시키기도 한다. 항우울제 종류에 따라 체중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항우울제를 복용한다고 반드시 체중이 증가하는 건 아니다.
우리 몸은 간혹 우울하거나 마음이 공허할 때, 또는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때 허기를 느끼고는 한다. 이때 허기를 느끼는 신체 부위는 위나 장이 아닌 뇌다. 뇌의 포만 중추는 감정의 영향을 받아 몸과 마음이 편안할 때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우울감과 동반되는 외로움, 허전함, 공허함, 불안감, 분노 등 감정 상태에서는 식욕을 느낀다. 이런 부정적 정서가 일으키는 증상이 바로 ‘감정적 허기’다. 이는 말 그대로 ‘감정’이 고픈 상태다. 뇌는 감정이 고파지면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섭취해 억눌려 있던 감정을 덮어버리라고 지시한다. 많은 우울증 환자가 살이 찐 이유도 항우울제보다 감정적 허기의 만행일 가능성이 크다.
비만과 우울증, 호르몬 전쟁
흔히 비만과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두 질환 모두 생물학적 치료의 영역이라 반박한다. 호르몬 때문이다. 탄수화물을 적게 섭취하면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 중 하나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든다. 세로토닌은 행복한 감정이나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으로, 적게 분비될수록 우울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단 음식을 찾는 이유 역시 높은 밀도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은 당수치를 빠르게 높여주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금세 당수치가 떨어진 뇌는 다시 당을 올리는 음식을 찾게 되고,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며 살이 찐다. 즉, 행복한 호르몬 세로토닌의 부재로 살이 찌게 되는 것.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 axis) 작용과 관련해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 역시 두 질환에 한몫한다. 뇌가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량의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부신에서 분비되는 주요 호르몬으로, 혈당을 증가시키고 염증 반응을 억제해 신체가 스트레스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코르티솔이 장기간 상승된 상태로 유지되는데, 이는 신체를 예민하게 만들어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코르티솔은 아미노산과 포도당, 지방산을 방출해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며 식욕을 증가시킨다. 2014년 발행된 <소비자 심리학 저널(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에 따르면, 우리 몸은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될수록 당과 지방이 풍부한 음식의 소비를 촉진한다. 고당·고지방 음식이 뇌의 메커니즘을 자극하며 즐거움을 주고 식욕을 통제하기 어렵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치솟는 코르티솔의 영향으로 비만과 당뇨, 근력 저하, 부종, 고혈압 등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운동이 답이다
비만과 우울증을 모두 동반한 환자라면 어떤 치료부터 먼저 해야 할까? 물론 2가지를 동시에 치료하는 게 좋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우울증 치료가 먼저다. 우울증의 대표 증상인 의욕 저하나 폭식은 비만을 악화시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비만 치료를 통해 체중 감량에 성공하더라도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으면 재발 위험도 높다. 다행히 두 질환을 한 번에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일석이조의 치료법은 단연 ‘운동’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동은 힘든 고강도 운동이 아니라 하루 50분 정도 약간 숨이 차거나 땀이 날 정도로 몸을 움직여주는 것. 단, 무리한 운동은 근육과 관절에 손상을 입힐 수 있으니 주의한다.
운동을 추천하는 이유는 하나다. 몸의 변화는 외모 콤플렉스로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마음을 회복시키는 데에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낮은 자존감은 비만의 후유증이자 우울증의 근본 원인이다. 아무리 살을 빼도 낮은 자존감에 빠져 있다면 소용없다. 자존감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되찾을 수 없다. 아기가 자신의 손과 발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가며 스스로 존재를 파악하듯, 운동을 통해 잠든 감각을 깨우고 몸과 마음에 찾아오는 변화를 느껴야 한다. 뚱뚱해서 우울한 게 아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 우울할 뿐이다.
사진 김태선
모델 아카리
메이크업 박수지
헤어 박수정
스타일리스트 최원주
도움말 조성우(같은마음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참고서적 <왜 아무 이유없이 우울할까?>(동양북스, 가브리엘 페를뮈테르) <세로토닌의 비밀>(미다스북스, 캐롤 하트)
어시스턴트 공지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