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영양제의 모든 것
먹으면 잠이 와요? 돈 주고 ‘꿀잠’ 삽니다.
1 전 국민 수면 부족 시대
지난 6월 11일 강원도 강릉. 올해도 어김없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보통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는데, 무려 작년보다 일주일 가까이 빨라진 전국적인 첫 열대야였다. 수면을 위한 최적의 온도는 18~20℃인데, 열대야는 바깥의 온도가 25℃ 이상인 무더운 밤을 뜻한다. 최근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30℃가 넘는 초열대야 현상까지 종종 일어난다. 이처럼 기온이 올라가면 체내 온도 조절 중추가 자극받아 우리 몸을 각성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비단 열대야가 지속되는 여름만의 문제가 아니다. 67만 명. 2021년 우리나라에서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의 수다. 2016년 50만 명 미만이던 국내 수면장애 환자는 연평균 8%씩 증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2018~2022년 수면장애 환자 건강보험 진료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09만8819명으로 4년 전인 2018년 85만5025명보다 28.5% 늘었다. 결국 2023년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수면 시간 집계에서 최하위에 이름을 올렸다.
2 돈 되는 잠, 슬리포노믹스
잠들지 못하거나 수면 시간이 부족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간신히 잠들었더라도 수면의 질 또한 떨어진다. 헬스 테크놀로지 기업 필립스가 2021년 3월 19일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전 세계 13개국 1만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면과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세계인의 55%가 수면에 만족도를 보인 반면, 한국인은 41%만이 만족한다고 응답해 대다수 한국인이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일까?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만큼 관련 산업의 성장 또한 눈에 띈다. 숙면을 돕는 침구뿐 아니라 디바이스, 애플리케이션, 음료, 젤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수면 산업의 성장을 일컫는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슬리포노믹스 시장 규모는 2011년 4800억원에서 2021년 3조원으로 10년간 6배가량 증가했으며, 글로벌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2026년 4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3 잠이 보약? 보약을 위한 보조제
수면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숙면을 돕는 다양한 건강기능식품도 출시되었다. 현재 약국이나 건강기능식품 판매점에서 판매하는 수면 보조 영양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수면제와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능성을 인정받은 원료를 사용해 만든 제품이다. 수면 보조 영양제 성분은 유행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대부분 수면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의존성도 낮은 천연 성분으로 구성돼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까지 수면 보조 영양제가 불면증을 치료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잠드는 데 오래 걸리거나 자다가 자꾸 깨는 등의 일반 불면증 관리에는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불안하고 예민해서 밤에 잠들기 어려운 사람도 이 같은 제품을 꾸준히 섭취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를 얻어 컨디션 회복과 수면의 질 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런 효과를 보려면 안전한 성분으로 기능성을 인정받은 제품을 최소 2주 이상 섭취해야 한다.
4 영양제는 약이 아니에요!
수면 보조 영양제의 효과에 대해선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일단 수면 건강 기능을 인정받은 성분이 제한적이다. 작년 한국소비자원과 식약처는 국외 직구 제품을 포함해 국내에 유통 중인 수면 건강 관련 제품을 조사한 결과, 효능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기재해 부당 광고로 적발된 제품이 무수히 많았다. 게다가 시판 제품 대부분이 수면 유도에 도움을 주었다는 연구나 임상시험이 있어도 이를 의학적으로 입증할 수치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수면 보조 영양제를 복용해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수면장애는 잠들기까지 어려운 경우,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경우 등 원인과 유형이 다양하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충분히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수면장애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 수면장애를 겪는다고 해서 약물을 함부로 쓰진 않는다. 전문가와 함께 치료 목표와 기간을 명확히 정하고, 인지행동치료 같은 비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약물을 서서히 줄이면 부작용 없이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5 잘 자고 잘 사는 법
퇴사 후 알고리즘이 나를 유튜브로 이끌었다. 유튜버 유네린의 채널 속 영상이었다. 취업 준비 과정부터 퇴사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하며 “나는 ‘갓생’ 사는 줄 알았는데 그냥 과로하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내가 행복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올해 3월 슬립테크 스타트업 무니스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MZ세대(1980~2010년생)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God)’과 삶을 의미하는 ‘생(生)’을 조합한 신조어로, 매일 생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부지런하게 사는 인생을 일컫는 ‘갓생’, 잠은 죽어서 자라는 뜻의 ‘잠죽사’까지. 어쩌면 우리는 잠을 줄이는 것을 시작으로 계획적인 삶에서 계획만 남은 삶, 신 같은 삶을 살려다 과로사로 신과 마주할 삶을 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잠에 쏟아야 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살아남으려면 숙면이 답이고, 숙면의 길은 ‘걍생’부터다.
Q 최근 출시된 수면을 돕는 영양제가 실제로 수면에 도움을 주나요?
2024년 4월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레리안과 레몬밤, 테아닌, 사프란 등 몇 가지 수면 보조 영양제 효과에 대한 무작위 대조 실험 결과가 게재됐다. 64명을 대상으로 6주간 영양제와 가짜약을 투약하고 수면의 질을 평가하는 ‘피츠버그 수면의 질 지수(Pittsburgh Sleep Quality Index, PSQI), 잠든 후 깨어 있는 총시간, 코르티솔 분비량 등 수면과 관련된 항목을 검사했다. 검사 결과 영양제를 섭취한 그룹과 대조군에서 모두 유의미한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영양제를 먹은 그룹과 가짜약을 먹은 그룹 모두 섭취량이 적을수록 수면의 질 지수도 낮았다. 즉 수면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약물 치료 시 플라세보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위의 실험 결과와 달리 수면 보조 영양제로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었다. 유튜브 ‘오징어약사TV’ 채널을 운영하는 김선영 약사는 “어떤 한 영양제가 모든 사람의 수면의 질을 개선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어떤 한 성분이 누구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현대 의학의 중심에 있는 의사들에게 영양제가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이렇게 효과 재현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하는 방식은 어느정도 근거 있는 성분으로 각자가 시도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영양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Q 수면 보조 영양제가 ‘수면’ 자체가 아닌 긴장 완화, 자율신경계 조절 등을 돕는 작용만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일단 수면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의료인이 처방하는 의약품에만 해당한다. 영양제는 그 밑의 영역인 건강기능식품이나 일반 식품의 범주로, 이 분류에서는 해당 문구를 사용할 수 없고 실제로도 그렇다. 또 시판되는 수면 보조 영양제의 기전은 대부분 비슷하다.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활성을 촉진해 긴장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수면에 도움을 주는 영양소가 많다. 만약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의 과활성으로 불면이 유발된 사람이라면 이런 영양제가 도움이 되겠지만, 사람마다 발병 원인이 같지 않으니 효과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본인이 겪는 수면장애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면 전문 의료인에게 상담을 받는다.
1 베러웨러 본질 멜라퓨어 입면에 도움을 주는 식물성 멜라토닌과 스트레스 진정, 수면 안정화에 효과가 있는 타트체리 추출물, L-테아닌, 가바, 진정 이완으로 숙면을 이어주는 감태 추출물로 완성한 제품. 편안한 숙면을 취하게 해준다. 30정 5만원.
2 마이니 딥슬립 이뮨 수면 질 개선에 도움을 줄 락티움과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 완화를 도울 테아닌, 에너지의 이용에 필요한 마그네슘 등을 원료로 사용했다. 액상 280ml+정제 14g(액상 20ml+정제 1g(2정)×14병) 9만7000원.
3 트루스비 딥나이트 일반 상추 대비 124배의 락투신을 함유한 흑하랑상추 분말과 마음 회복을 위한 테아닌, L-트립토판, 가바, 타트체리까지 한 포에 담은 소형 환 형태의 제품. 약사와 한의사로 구성된 전문 개발팀이 만들어 더욱 믿음이 간다. 30포 5만3900원.
4 몽제 굿나잇 슬립케어 우리 쌀에서 추출한 미강주정 추출물을 사용해 건강한 수면은 물론 비타민 B₁·B₁₂, 판토텐산, 엽산 등으로 에너지 대사를 돕는다. 60정 4만2000원.
5 바이탈뷰티 굿슬립가바 365 식약처에서 기능성을 인정받은 원료 ‘L-글루탐산발효 가바분말’과 ‘나이아신’을 함유해 숙면을 돕고 개운한 아침을 맞을 수 있게 해준다. 60정 3만7000원.
사진 김태선
모델 스완
헤어&메이크업 정지은
스타일리스트 박이화
도움말 김희준(봄온담한의원), 김선영(유튜브 ‘오징어TV약사’)
참고서적 <스탠퍼드 교수가 가르쳐 주는 숙면의 모든 것>(니시노 세이지, 브론스테인), <당신이 잘 잤으면 좋겠습니다>(김경철, 세종서적)
어시스턴트 박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