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피부를 붉게 한다는 건 거짓말!
툭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 진짜 커피 때문일까?
1 커피, 피부에 독일까 약일까?
13세기 이전까지 커피는 오직 성직자에게만 허락된 음료였다. ‘아랍의 포도주’라고 불리며 재배도 아라비아 지역에 한정됐다. 그때 마침 발발한 십자군전쟁을 기점으로 일반인도 커피를 접할 수 있게 됐다. 19세기 나폴레옹은 “커피는 내게 온기를 주고 나를 깨워주며, 평소와 다른 힘, 그리고 굉장한 기쁨을 동반한 고통을 준다”라고 말했다. 21세기 커피는 한국인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음료가 됐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의 수가 늘자 커피와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대부분의 커피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원인은 카페인 때문. 주로 카페인 성분 자체의 문제점보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피부학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카페인의 이뇨 작용으로 수분 밸런스가 깨지거나 혈관이 확장해 피지 분비를 증가시켜 피부 트러블을 유발한다는 것. 또 카페인은 히스타민 분비를 증가시켜 안면홍조를 자극하는 요인으로도 자주 언급된다. 안면홍조가 나타나면 정상 피부에 비해 사소한 자극에도 혈관이 확장하는데, 한번 늘어난 혈관은 되돌아가기 어려워 증상이 악화하며 주사피부염(Rosacea)으로까지 번진다.
그런데 최근 이런 주장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2018년 미국의학협회에서 발행하는 의학 저널 <자마 피부의학(JAMA Dermatology)>에 게재된 논문에는 “카페인이 함유된 커피를 섭취한 군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 군보다 안면홍조의 위험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실려 있다. 커피가 안면홍조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2 누명 벗은 커피의 무죄
한 술 더 뜬 결과도 보고됐다. 미국 하버드대와 브라운대, 그리고 중국의 칭다오대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5년에 걸쳐 여성 8만2737명을 대상으로 커피·홍차·청량음료의 섭취량과 안면홍조 발생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조사 기간 중 4945명이 홍조 질환인 주사피부염을 겪었다.
그러나 이 질환과 커피는 관계가 없었다. 커피를 하루에 4컵 이상 마시는 여성은 1000명 중 4명만 홍조를, 반면 한 달에 한 컵 이상을 마시는 여성은 1000명 중 5명이 홍조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커피를 마시는 여성의 홍조 위험이 약 23%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디카페인 커피를 먹는다고 해서 홍조가 줄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연구팀은 카페인과 커피에서 발견되는 다른 생리 활성 화합물의 조합만이 주사피부염에 대해 혈관 수축이나 항염증성 기전을 통해 대응한다고 추측했다.
물론 커피와 홍조의 관련성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려면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커피, 특히 카페인이 끼치는 악영향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한다. 커피가 안면홍조와 주사피부염을 유발하는 건 아니지만 악화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카페인은 교감신경을 자극한다. 이는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혈관의 압력을 높여 혈관을 좁아지게 하는데, 카페인 효과가 줄어들 때쯤 혈관이 다시 확장하며 주사피부염이 악화한다. 그런데 왜 카페인은 똑같은 붉어짐 증상인데도 안면홍조와 주사피부에 다르게 작용하는 걸까?
3 볼 빨간 두 얼굴, 뭐가 다른데?
대한피부과학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15년까지는 3년간 18.2% 증가했다. 반면 국내에서 주사피부염의 유병률은 1.7% 정도다. 수치상 그 수가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예상외로 다른 나라보다는 매우 높은 편이다. 피부과학회에 따르면, 40명 중 1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주사피부염은 모든 연령에서 발병할 수 있지만, 주로 30~50대에서 흔하게 나타나며 1:1.8 비율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 안면홍조는 주사피부의 혈관확장형 타입으로 분류되는데, 홍조를 띤다고 주사피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주사피부염의 증상으로 홍조가 나타나는 경우는 많다.
안면홍조는 혈관의 확장과 수축의 반복 결과 비가역적으로 혈관이 확장해 붉음증이 발생하는 피부 질환으로, 증상의 기간이 일시적인 편이다. 그러나 주사피부염은 만성 염증성 피부 질환으로 붉어짐 증상을 포함해 화끈거림과 따끔거림, 구진이나 농포, 부종까지 동반한다. 일반적으로 주사피부 하면 빨간 딸기코 증상을 떠올리는데, 얼굴이 전체적으로 붉어지면서 염증 반응이 생기는 혈관 확장형, 여드름처럼 올라오지만 여드름과는 다른 구진농포성 주사, 코 피부의 형태를 울퉁불퉁하게 손상시키는 비류형과 눈에 생기는 안 주사까지 4가지 패턴이 있다. 주사피부염은 자연 치유되지 않으며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 치료하지 않으면 점진적으로 심해지면서 눈까지 침범해 반흔으로 인한 각막 천공을 야기하고, 실명까지 초래하는 무시무시한 질환이다.
4 관리보다 치료, 치료보다 예방
주사피부는 단순한 원인으로 생기는 질환이 아니다. 면역학적 문제나 혈관 이상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 때문에 발생한다고 추정된다. 다만 악화 요인으로는 열을 비롯한 자극과 만성적인 자외선 노출 등이 있으며, 염증을 유발하는 밀가루나 발효식품, 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다. 또 증상의 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각각의 증상에 맞게 치료해야 한다. 염증이 심할 때는 항염제나 항생제를 사용하거나 레이저, 전류를 이용해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무엇보다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질병이 아니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며 재발이나 만성화에 이르지 않도록 유발 인자를 피하고 조절하며 관리해야 한다.
주사피부염으로 인해 얼굴이 붉어지고 혈관이 늘어나 피부에 피가 몰리면 피부온도가 높아져 피부 속 수분이 증발해 건조해지기 쉽다. 건조함은 각질층 손상으로 이어져 피부를 더 예민하게 만든다. 따라서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자극이 적고 보습 효과가 뛰어난 세라마이드엔피나 피부 재생과 진정에 효과가 있는 카마줄렌 성분, 그리고 피부 장벽 회복에 도움을 주는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지방산을 함유한 보습제를 충분히 바를 것. 반면 피해야 할것들도 있다. 주사피부는 피부 장벽이 약화된 만큼 자극을 최대한 피해야 하므로 민감한 피부를 자극하는 향료와 각질 제거 기능의 제품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또 혈관을 확장시키는 행위나 온도 변화와 연관돼 수용체를 자극하는 행위는 금하길 권유한다.
사진 김태선
모델 메구
메이크업 정지은
헤어 박수정
스타일리스트 임지현
도움말 김홍석(보스피부과), 문득곤(미파문피부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