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CENT UNIVERSE, 한국 향수 브랜드 대표 3
취향이 곧 정체성이 되는 시대. 누군가 정해둔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향을 브랜딩하는 한국 프래그런스 브랜드 대표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본투스탠드아웃
임호준 대표

‘BORNTOSTANDOUT’의 네이밍에 담긴 메시지가 궁금해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각자 다른 존재인데, 사회는 끊임없이 비슷해지라고 하죠. 특히 한국에서는 더 그렇고요. 본투스탠드아웃은 그 흐름에 대한 솔직한 반항입니다. 튀기 위해서 튀라는 말이 아니라, 굳이 숨기지 말자는 이야기예요. 나답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보틀이 ‘조선백자’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전통적인 형태를 보틀로 가져온 이유와 그 안에 담고 싶었던 상징이 궁금해요.
조선백자는 굉장히 절제되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가진 오브제예요. 한국적인 전통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 완벽하게 단정한 전통의 형태 위에, 전혀 단정하지 않고 전통적이지 않은 향을 담고 싶었습니다. 백자는 순수함과 전통을, 그 안의 향은 욕망과 충동, 반항을 상징해요. 뿌리는 순간, 그 조용한 외관이 깨지는 구조죠. 그 대비 자체가 본투스탠드아웃의 본질입니다.

‘Dirty Rice’처럼 이름부터 강렬한 향이 많아요. 네이밍을 정할 때 규칙이 있나요?
네이밍은 향수가 소비자와 하는 첫인사입니다. 어렵거나 추상적인 이름에는 관심이 없죠. 직관적이어야 하고, 감정이 바로 떠올라야 합니다. ‘Dirty Rice’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예요. 익숙한 것에 ‘더러운’이라는 단어를 붙였을 때 생기는 긴장감, 그게 이 향의 정체성이거든요. 이름만 보고도 “이건 뭐지?”라는 질문이 나오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겁니다.
유럽 시장부터 먼저 공략했다고 들었어요. 유럽 니치 시장에서 소비자가 새롭게 느낄 만한 포인트가 있을 것 같아요.
유럽은 니치 퍼퓸의 본고장이지만, 시장 자체는 굉장히 열려 있어요. 우리가 새롭게 느껴진 이유는 ‘한국 브랜드’여서가 아니라, 접근법과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우아한 니치가 아니라, 감정이 직설적이고 조금은 과감한 니치. 익숙한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완성도는 높게 유지하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간 것 같아요.

본투스탠드아웃이 정의하는 ‘좋은 향’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게 좋은 향은 ‘예쁜 향’이 아닙니다. 기억에 남는 향이에요. 누군가를 기분 좋게만 하는 향보다는 감정을 건드리는 향. 조금 불편해도 좋고, 호불호가 갈려도 괜찮아요. 대신 한번 맡으면 잊히지 않아야 합니다. 좋은 향은 각각의 사람처럼 개성이 있어야 하고,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향을 만들 때 본투스탠드아웃만의 기준이 있나요? 그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출발점은 늘 같습니다.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예요. “이 향은 왜 존재해야 할까?” 트렌드나 시장조사, 소비자 평가 등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어필할 목적으로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생각도 없어요. 대신 조향사들에게 늘 말합니다.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처럼 생각해달라”고요. 제게 중요한 건 이 향이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입니다. 기분을 바꿔주는지, 용기를 주는지, 혹은 그냥 솔직해지게 만드는지. 존재 이유가 분명한 향은 자연스럽게 제 주인을 찾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런 향을 만들고 싶어요.

본투스탠드아웃에 입문하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는 향이 있다면요?
‘Drunk Lovers’나 ‘Dirty Rice’요. 두 향 모두 강렬하지만 접근성도 있습니다. 브랜드의 세계관을 가장 잘 느끼게 하면서도, 매일 쓰기 좋은 향이거든요. 한마디로 말하면 조용히 중독되는 향입니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계속 찾게 돼요.
| 로에
권소영 대표

‘일상에서 편하게 즐기는 향’이 강점인데, 특히 신경 쓰는 포인트가 있나요?
로에는 향의 ‘전문성’과 동시에, 누구나 향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친근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향 전문가가 전개하는 라이프스타일 향 브랜드로서, 본질인 ‘향’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에서 엄선한 고품질 원료만 사용합니다. 저급 향료나 부향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타협하지 않고, 일상에서 믿고 쓰는 품질을 지향하죠. 일상과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편안함’을 모티프로, 향 설명도 친근하고 직관적인 언어로 풀어냅니다.

로에를 대표하는 향 한 가지를 소개해주세요.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러 ‘화이트셔츠 EDT’. 갓 세탁한 화이트 셔츠가 살결에 스치듯 전해지는 깨끗함과 부드러움을 담은 향이죠. 정돈된 공기의 산뜻함에 은은한 플로럴 터치가 더해지고, 비누 향과 머스크가 포근하게 이어집니다. 일상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사계절 내내 부담 없이 사용하기 좋아요.

로에 팀이 평소 즐겨 쓰는 향이 궁금합니다.
최근 저희 팀에서는 ‘마이 바이올렛 EDP’가 가장 인기인데요. 로에의 열두 번째 향수로, 새롭게 선보이는 보틀 디자인과 함께 출시돼 더욱 애정이 가는 향이에요. 흙의 온기를 머금고 피어나는 바이올렛(제비꽃)에서 영감 받은 향으로, 은은하게 스며드는 포근한 무드를 담아 겨울 시즌 선물 아이템으로도 반응이 좋아요.
제품 라인업이 넓은데, 앞으로 더 확장하려는 향의 카테고리가 있을까요?
로에의 향이 일상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뷰티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에요. 그 연장선으로 초콜릿과 캔디의 향을 담은 ‘멜팅 립밤’ 등 새로운 뷰티 제품군을 준비 중이며, 곧 출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향 전시나 향 클래스도 진행한다고 들었어요. 가장 반응이 좋은 프로그램과 사람들이 좋아한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의 시그너처 향 ‘Slow Stop’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습니다. 조향사 셀린느 엘레나(Ce′line Ellena)와 협업해 향 개발 기획부터 라이브러리 공간 적용까지 전 과정을 디렉팅했어요. 개발부터 적용까지 약 1년이 소요됐고, 현재 5년째 각 라이브러리의 시그너처 향으로 운영 중입니다. 방문객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향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기억해주신 덕분에 향이 공간의 경험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이끈 것 같아요. 또 브랜드의 모태가 된 성수 대림창고갤러리 향 전시도 빼놓을 수 없죠. 팬데믹 시기의 봄을 ‘향’으로 표현한 이 전시에서 향을 경험한 관람객의 긍정적인 반응이 모여 실제 제품화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향이 바로 로에의 첫 번째 향수, ‘하쉬그린(Harsh Green)’입니다. 답답하던 시기에 하쉬그린 향을 통해 위로와 힐링을 받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그 경험은 지금까지도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큰 힘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 노운 언노운
홍윤표 대표

‘nown unown’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nown unown’은 ‘known과 unknown의 여정, 그리고 그 연결’을 의미합니다. 이미 ‘아는 나’와 아직 ‘알지 못하는 나’ 사이를 오가는, 끝없는 여정이죠.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체험하고, 그걸 통해 조금씩 다른 내가 됩니다. 노운 언노운의 향수는 그 여정을 함께하는 도구예요. 향을 통해 나를 느끼고, 나를 지나, 다음의 나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경험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노운 언노운이 말하는 ‘자기다움’은 무엇인가요?
그걸 향으로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궁금해요. 더 나은 나를 향한 열망과 열정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과하거나 튀지 않는 상태입니다. 편안하지만 깊고, 강하지 않지만 오래 남아 결국 주변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것. 저는 그 지점을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과 장면의 정점이라고 생각해요. 향 역시 그런 순간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오브제와 같은 보틀이 인상적이에요. 6개 에디션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한 이유와 보틀 디자인에 담긴 의도를 듣고 싶어요.
6개의 보틀을 가로로 나란히 두면 하나의 로고가 완성됩니다. 각각은 독립적이지만, 함께 놓였을 때 하나의 여정이 보이도록 설계했어요. 로고의 상단과 하단은 거울처럼 미러링 구조로 반사되어 nown과 unknown, 즉 ‘앎’과 ‘모름’의 대칭을 이룹니다. 낮과 밤처럼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대칭 요소를 담되, 그 대칭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하모니로 연결되는 완성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추천하는 향 레이어링 조합이나 사용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innocent’의 맑고 하얀 달콤함에 ‘bloom’의 머스크나 ‘zen’의 스웨이드를 얹어보는 조합을 추천해요. 향이 더 고혹적이고 입체적으로 변합니다. 하루의 분위기나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겹쳐 사용해도 좋아요.

특히 애착을 가진 향과 그 향에 담긴 스토리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wet forest’를 가장 좋아합니다. 비가 막 그친 직후, 햇살이 스며들면서 주변 공기를 말리고 비추는 순간이 있잖아요. 새소리가 들리고 맑은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면서, 마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듯한 생기가 차오르는 느낌요. 한국에서는 익숙한 장면이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이를 낯선 감각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숲과 정원을 표현한 향수도 각기 다르게 느껴졌고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일상적인 장면, 그리고 실제로 향 추천 과정에서 이 장면에 대한 요청을 가장 많이 받았던 순간이라 잘 담아냈다고 느끼는 향이에요.
사진 각 브랜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