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봄을 마주한 위너 진우
서른의 봄을 맞은 위너의 진우를 만났다. 이유 없이 눈물 나던 스물아홉과 작별한 그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이젠 변하고 싶어요.”
“5년 뒤, 10년 뒤엔 제가 지금보다 좀더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금은 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제 행동이나 말투가, 물론 나쁘게 말고, 좋은 쪽으로요.”
보기 드문 촬영장이었다. 누구 하나 의문이나 불만이 없는, 모두 입꼬리가 반쯤은 올라간 상태로 흐뭇하게 한 사람을 지켜보는. 저녁 8시, 밖에는 때늦은 눈보라가 치고 있었지만, 보드라운 라임색 니트에 물이 예쁘게 빠진 데님 팬츠를 입은 진우가 카메라 앞에 서자 스튜디오 안에 훈훈한 공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드는 기분 좋은 예감, ‘오늘 촬영은 금방 끝나겠군!’ 그리고 역시나, 촬영은 예상보다 한 시간 반을 앞당긴 시각에 스태프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끝났다. 그때까지 진우는 내내 차분했다.
조그만 공룡 피규어를 테이블 위에 놓고 이리저리 가지고 놀 때도, 말쑥하게 타이까지 맨 채로 달밤의 줄넘기를 할 때도, 바닥에 누워 다리를 살짝 꼰 채로 책을 볼 때도. 메이크업을 지우고 마주 앉은 그에게 손에 꼽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은 촬영장이었다고 말하자 의외라는 듯 눈이 동그래지며 묻는다. “정말요? 진짜요?” 입고 있는 스웨트 셔츠의 울라프와 똑 닮은 표정이었다.
지금 시각이 10시 41분이네요. 보통 이 시간엔 뭐해요? 밤 10시 41분… 그럼 제 방 침대에서 TV를 보겠네요? 하하. 최근엔 예전 시트콤에 꽂혀서 <하이킥> 시리즈 1, 2, 3 시즌을 다 봤어요. 스케줄이 없는 날엔 보통 그렇게 보내요. 드라마든, 영화든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요.
관찰예능에 나온 것처럼 진짜 집돌이인가봐요? 한동안 드론도 배워보곤 했는데, 스케줄 없는 중간중간 하려니까 쉽지가 않더라고요. 필기는 통과했는데 아직 실기는 못 봤어요. 실기를 보려면 수업을 열 번 이상 듣고 수료해야 하거든요. 8번까지 듣고 ‘AH YEAH’ 활동하면서 멈췄네요.
자격증도 따려고요? 취미로 충분하지 않아요? 이게 국가자격증이더라고요. 왠지 노후에도 좋을 것 같아서요, 하하. 위너 ‘ISLAND’ 뮤직비디오 찍으러 하와이에 갔을 때,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느낌? 잠시만요, 있으려나? (휴대전화를 뒤져 영상을 찾았다) 여기가 하와이거든요? 이렇게 바다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을 찍었어요. 별거 아닌데, 전 기분이 좋더라고요.
별거 아닌 게 아닌데요? 원래 뭔가에 빠지면 모 아니면 도예요? 네, 맞아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뭔가 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어요. 다른 것들도 해보고 싶은데, 중간에 끊기는 게 싫더라고요. 군대 다녀와서 하려고요.
화보 촬영 전날엔 보통 뭐해요? 진우 씨 만난다니까 주변에선 피부 관리 비결 좀 물어보라는데, 솔직히 타고난 거 아니에요? 화보나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는 날엔 꼭 운동을 해요. 부기와 독소를 빼는 거죠. 그리고 팩을 하고 촬영장에 옵니다. 오늘도 그랬고요.
장바구니에 넣어뒀다던 ‘거꾸리’는 샀나요? 저한텐 정말 필수템인데 안 샀어요. 제 방에 그게 있으면 정말 집 밖에 안 나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파트 단지 체육관에 가서 해요. 아침에 거꾸리를 하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부기 완화에 도움이 된대요.
오늘 화보 촬영에선 내내 막힘이 없던데, 촬영장에서 어떤 디렉션을 받을 때 어려워요? 오늘은 평소 제가 다 좋아하는 포즈들이라 어려울 게 없었어요. 가끔 저한테 어울리지 않는 디렉션을 받으면 난감하긴 하죠. 예를 들자면, 힙합적인 거?
껄렁한 거요? 동작을 크게 크게 하는 걸 못하겠어요. 기지개 펴는 건 하겠는데, 넓은 공간을 활용해서 움직이는 게 어렵다고 할까요? 그게 제 취약점인 것 같아요.
표정은 어떤가요? 왜, 표정이 엄청 다양한 사람들 있잖아요? 눈썹 하나만 올리고, 찡그리고 하는 표정 잘 짓는. 전 보통 웃거나 무표정이거나 가만히 쳐다보는 정도거든요. 연습을 하는데도 눈썹 활용하는 건 잘 못하겠어요.
진우 씨는 눈썹보다 눈빛이죠. 아이 컨택을 참 잘하는 것 같아요. 라디오 방송 나왔을 때, 민호 씨가 진우 씨의 눈이 부럽다고 하니까 진행자인 박경 씨가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눈이라고 하는 대화가 인상적이었어요. 신뢰감을 주는 눈을 가진 것 같나요? 신뢰감까진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할 때 편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눈을 쳐다봤을 때 악의가 있어 보이진 않으니까요.
전엔 아이 컨택을 잘 못했다면서요. 연습한 거예요? 저 진짜 아이 컨택 못 했어요. 땅 보고 걸어다녔거든요. 그런데 다니던 보컬학원 원장님이 혼내시더라고요. 말할 때는 사람 눈을 보라고요. 그 뒤로 사람들 눈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작년엔 유난히 나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지난해 스물아홉은 어땠고, 현재 서른은 어떤가요?솔직히 스트레스를 진짜 많이 받았어요. 나이 앞자리가 바뀌면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뀔까 두렵기도 했고요. 나의 행동일까, 일상일까… 그런데 막상 서른이 돼보니 똑같더라고요. 괜히 미리 걱정했던 것 같아요.
김진우의 20대를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뭐가 좋을까요? ‘자기 관리’, 그리고 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보니 뭔가 쓸쓸하네요. 기분 좋은 단어를 꼽고 싶은데 생각이 잘 안 나요. 솔직히 20대 때 전 그랬던 것 같아요. 좀, 불쌍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아니란 말로 들리네요? 지금은 덜 불쌍해졌죠. 부정적인 생각은 더 이상 안 하려고 해요. 스물아홉엔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유 없이 눈물이 났어요. 한 번은 촬영 후에 제가 한 말을 빼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어요. 팬들이 보면 걱정할 것 같더라고요.
방송에서 보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형들과 있을 때 참 편해 보여요. 다른 분야의 연배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운 것 같아요. 맞아요. 형들이 정말 잘 챙겨주시거든요. 착하다, 예쁘다 해주시고, 하하. 제가 막내인 곳으로 가면 잘하는 만큼, 사랑 받는 느낌이 있어요. 팀에서는 맏형이다 보니 그런 사랑을 받기 어렵거든요. <착하게 살자> 같이 했던 병재 형, 건형이 형이랑은 요즘도 자주 만나요. <오지의 마법사> 멤버들이랑 PD님, 작가님과도 자주 만나 술 마시고요.
그런 자리에선 자기 관리 안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안 하는 거죠? 그래서 술이 좋고요? 그런가? 그런 것 같아요! 술 마시면서 저를 좀 내려놓고, 할 말도 하면서요.
어떤 사람한테 잘 반하나요? 전 늘 ‘바른 사람’이 좋더라고요. 뭐랄까, 정직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좀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저한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좋아요. 저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면 해주는 사람이 좋은 거죠. 그럼 전 일단 마음을 열어요.
인생의 좌우명 같은 거 있어요? 중고등학교 때까진 ‘최선을 다하자’였고요. 성인이 되어서는 ‘포기하지 말라’가 됐어요. 책에서 본 문구였는데, 원하는 걸 이루고 싶다면 실패했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전 그 말이 너무 좋아요.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가 좋겠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이요. 그땐 몰랐는데, 학창 시절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친구들이랑 자주 보고 싶은데, 제가 핸드폰을 자주 잃어버려서 연락이 되다 말다 해요.
핸드폰은 왜 자주 잃어버려요? 뒷손이 없는 편이에요? 잘 떨구기도 하고, 두고 오기도 하고 그래요. 남들 건 잘 챙기는데 제 건 잘 못 챙겨요.
인터뷰에서 연기를 하고 싶단 이야길 여러 번 했어요. 연기하는 모습은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제 최종 목표는 위너의 김진우로서는 물론이고, 연기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거예요. 감사하게도 제 목표였던 가수의 꿈을 이루었고,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에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배우라는 또 다른 꿈을 위해 공부하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이렇게 꽃 같은 김진우가, 역할을 위해 살을 찌우고 얼굴을 상하게 만드는 날이 올까요? 풍문으로 실제 곰이랑 싸웠단 이야기가 들리고. 아마도요? 하하. 사이코패스나 살인범처럼 제 이미지와 상반되는 역할을 하고 싶은데, 배우분들은 “네 얼굴에 맞는 걸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하고 싶은 역할이 있더라도 그건 나중의 일이고, 일단 본인 이미지에 맞는걸 하는 게 먼저라고요.
솔로 활동할 때 잡지 형식으로 다양한 콘셉트의 김진우를 보여줬잖아요. 직접 <월간 김진우>란 잡지를 만든다면 첫 호 테마는 뭘로 하고 싶어요? 일단 첫 호는 고급스러운, 품위 있는 느낌을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요. 캐주얼한 콘셉트는 제 모습을 더 담아야 하는 거니까, 이후에 보여드리고요.
그럼 본인 방에서 가장 비싼 물건도 공개할 수 있어요? 일단 옷은 아니에요. 제 방엔 정말 물건이 없어요. 조명이랑 TV 있고, 베란다에 테이블 있는 정도… 침대가 가장 비쌀 것 같은데요?
데뷔한 지 벌써 2000일이 지났더라고요. 요즘 위너 멤버들은 틈나는 대로 팬들이랑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최근에 팬들 덕분에 뭉클했던 순간이 있다면요? 얼마 전에 브이라이브 했을 때, 팬들이 올려주는 글들 보면서 뭉클했어요. 저희 노래 ‘OMG’에서 “내 생에 봄은 너라서…” 가사에 위너랑 인서를 넣어서 개사해서 계속 올려주더라고요.
SNS 보니까, 아시안 투어 공연에서 네 사람이 어깨를 끌어안은 사진이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럴 땐 서로 어떤 말을 주고 받아요? “고맙다” “수고했다” 하죠. 서로한테 너무 고마워서요.
곧 새 앨범이 나오잖아요. 위너는 보통 여름에 앨범 활동을 했는데, 지난 앨범은 가을에 컴백하면서 평소보다 다크한 분위기를 보여줬어요. 봄에 나오는 이번 앨범 분위기는 어떤가요? 팬들을 향한 선물 같은 마음을 담았어요. 제 방에 팬분들이 보내준 편지를 모아둔 상자가 있는데, 저한텐 보물 상자거든요. 그런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많이 되돌아봤거든요. 듣는 분들도 위너와 함께했던 좋았던 기억을 담아두고,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팬들이 지칠 때 꺼내 보고, 들으면서 힘도 얻는 앨범이 되었으면 해요.
팬들에게 보내는 선물 상자를 어떤 곡으로 채웠을지 궁금하네요. 멤버들과 이야기할 때, 언젠가는 팬들한테 이런 노래를 꼭 들려주고 싶다 했던곡들이에요. 말하다 보니까 얼른 들려드리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곡 있어요? 힌트를 좀 준다면요? 있죠! 사람들이 제가 너무 덤덤하게 부르니까 더 눈물 난다고 한 곡이 있어요. 저도 꼭 부르고 싶었던 곡이었거든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위너 노래 중에 요즘 본인의 마음을 가장 건드리는 곡은 뭐예요? ‘예뻤더라(WE WERE)’요. 최근에 다시 들었는데 활동할 땐 못 느꼈던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때 우린 웃고 있더라, 정말 행복해 보이더라.’
30대의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요? 오로라를 꼭 보고 싶어요. 다녀온 사람들이 찍어 온 사진을 보면 정말 멋지더라고요. 아이슬란드 가서 오로라 보기, 그리고… 아, 시간 나는 대로 드론 자격증도 따야죠.
어떻게 나이 들고 싶어요? 멋지게 나이 든 남자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어요? 수염 기른 외국 할아버지요. 그런 할아버지가 댄디하게 입은 거 보면 멋지잖아요?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근데 수염이, 잘 나요? 네, 많이 납니다. 수염이 잘 어울릴진 모르겠는데, 지금 얼굴과는 많이 달라 보일 거예요.
연습생 생활 5년 만에 위너로 데뷔했고, 위너 데뷔 5년 만에 솔로 앨범을 냈어요. 지금부터 5년 뒤,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해보나요? 연습생 시절의 5년, 데뷔하고 5년… 물론 값진 시간이었지만, 아쉬움이 남기도 해요. 환경적인 건 많이 바뀌었지만 제 자신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5년 뒤, 10년 뒤엔 제가 지금보다 좀더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행동이나 말투가, 조금은 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물론 나쁘게 말고, 좋은 쪽으로요.
노력해서 상황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바뀌어서 상황을 달리 보고 싶은 마음일까요? 네, 그런 마음이에요.
모델 위너 김진우
사진 안상미
메이크업 김효정
헤어 김성환
스타일링 홍윤하
어시스턴트 하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