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을 컨트롤하는 갈색 지방
지방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이이제이(以夷制夷)’가 그대로 적용된 다이어트 방법이 있다. ‘지방’을 ‘지방’으로 잡는 것. 지방이라고 다 같은 지방이 아니다. 앞의 지방은 흔히 뱃살에서 연상되는 ‘백색 지방’이고 뒤의 지방은 ‘갈색 지방’이다. 갈색 지방은 백색 지방보다 모세혈관이 많기 때문에 철 함유량이 높은 미토콘드리아도 많아 갈색으로 보인다. ‘갈색 지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일반적인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호흡을 담당하며 포도당과 산소를 소모해 연료 분자를 만든다.
하지만 갈색 지방의 미토콘드리아는 특이하게 열을 생성해 일명 열발생 조절 단백질인 UCP-1(UnCoupling Protein 1)을 갖는다. 덕분에 지방 분해와 지방산 산화 능력을 갖게 된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율리아나 조젠코바(Ouliana Ziouzenkova) 박사의 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90일 동안 고지방 식사를 하고 갈색 지방 세포 캡슐을 주사한 쥐의 복부 지방이 주사를 맞지 않은 쥐보다 약 20% 줄었으며, 체중도 약 10% 감소했다. 약 50g의 갈색 지방이 최대한의 기능을 발휘한다면 전체 에너지 소모량의 20%를 차지한다. 즉, 백색 지방은 과잉 칼로리를 저장하고 살을 찌우는 반면 갈색 지방은 칼로리를 열로 방출하며 비만을 예방한다.
몸속의 난로갈색 지방
오늘부터 굶는다면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물 없이는 3일, 음식 없이는 3주 정도? 이제껏 아무것도 먹지 않고 두 달 이상을 버틴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악어는 다르다. 악어는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1년 이상 살 수 있다. 같은 생물인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인간은 체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온혈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정상 체온 36.5℃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태운다.
갈색 지방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인간은 성인이 되면서 갈색 지방이 점점 사라진다고 알려졌다. 신생아는 갈색 지방이 체중의 5%를 차지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체온 조절 능력이 향상되고 노화하며 갈색 지방 보유량이 감소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2009년 성인도 다양한 신체 부위 곳곳에 소량의 갈색 지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비만인 사람은 갈색 지방의 활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이유도 찾았다. 연구를 위해 이가 부딪칠 정도로 추운 실험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우리 몸에서 갈색 지방이 가장 활성화하는 때는 바로 추운 날씨라고 밝혔다. 이때 생성된 열은 체온 조절에 관여해 칼로리를 태우는 역할을 하는데, 갈색 지방 1kg이 무려 6000kcal를 소모한다는 사실!
제3의 지방 베이지색 지방
2012년 1월,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미국 하버드 의대 브루스 스피겔먼(Bruce Spiegelman) 박사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지방의 저장소인 백색 지방을 갈색 지방화해 열발생을 일으키는 호르몬을 찾았다는 것. ‘이리신(Irisin)’의 발견이었다. 근육세포에서 형성된 작은 단백질 조각인 이리신이 혈관을 타고 백색 지방 조직으로 이동해 변화를 일으킨다. 이리신은 인슐린 민감도를 높이고 운동 시 분비돼 근육량을 늘리며 백색 지방을 갈색 지방화해 열을 발생시킨다. 이렇게 갈색 지방화된 게 바로 ‘베이지색 지방’이다. 근육세포로 분화한 줄기세포에서 생성된 갈색 지방세포와 달리 베이지색 지방세포는 백색 지방 세포층 안의 전구세포로부터 만들어진다. 베이지색 지방은 차가운 기온이나 특정 호르몬에 반응해 열을 생성하고 칼로리를 연소하며 갈색 지방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지방으로 비만을치료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이어트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갈색 지방은 ‘지방’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먹는 행위로 지방을 활성화해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덜 먹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잘 먹어서 갈색 지방과 베이지색 지방이 활성화함으로써 다이어트가 가능하다는 것. 실제로 현재 이 분야는 과학자와 의사 사이에서 활발히 연구하는 주제다. ‘열발생 다이어트(Thermogenic Diet)’라는 용어도 만들어졌다.
매운 음식이 그 예다.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는 베이지색 지방을 자극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나는 것도 베이지색 지방이 에너지를 연소하며 열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베이지색 지방을 연소하는 성분은 캡사이신 외에도 카테킨이나 커큐민 등 다양하게 거론된다. 온도를 이용한 방법도 있다.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Virginia Commonwealth University)는 실내 온도를 19℃로 유지한 공간에서 평균 10시간 이상 4개월 동안 지낸 남성들의 갈색화된 지방이 42%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름이 끝난지금이 기회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이다. 가을은 무더위에 집 나간 식욕이 돌아오고, 풍성한 수확물이 식탁 위에 오르는 계절이다. 휴가 기간이 끝나며 힘들게 관리한 다이어트에 소홀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온이 낮아지는 지금이 다이어트 최적기라고 한다. 갑자기 온도가 변해서, 일이 너무 바빠서, 주말은 너무 피곤해서? 변명은 그만. 올가을은 갈색 지방을 활용해 다이어트와 건강을 모두 챙기자.
사진 김태선
참고 도서 <기적의 ABC주스>(북스고, 유병욱)
도움말 김희준(청주나비솔한의원)
어시스턴트 안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