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얼굴에 미세 플라스틱을 바른다?

지구인의 주적 미세 플라스틱. 숨 쉬고 먹고 마실 때뿐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도 우리를 위협한다.

매일 얼굴에 미세 플라스틱을 바른다?

1 전 세계인의 미움을 받는 너
미세 플라스틱은 지름이 5mm보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플라스틱의 특성은 일단 다 쓰고 버려지면 자연 분해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장기간에 걸쳐 축적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 건강에 가하는 위협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섭취 등을 통해 실제 인체로 유입되는 미세 플라스틱의 양, 인체 내 거동, 독성 영향과 인체 및 생태계 위해성과 관련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미세 플라스틱의 인체 노출 경로는 주로 대기 중 흡입에 따른 노출이고, 다른 하나는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된 음식물 섭취에 따른 노출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사람의 땀 성분이 미세 플라스틱에서 독성 화학물질이 배어나오도록 하고, 피부를 통한 흡수까지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 피, 땀, 눈물 그리고 플라스틱
대부분의 플라스틱에 들어 있는 유해 성분 중 땀 속에 포함된 지질 성분에 녹아 인체에 흡수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플라스틱에는 말랑하게 만들기 위한 프탈레이트, 색을 내기 위한 중금속, 자외선에 대응하기 위한 UV 안정제, 연소를 막는 난연제 등 여러 첨가제가 들어간다. 이 중 대부분의 성분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거나 인체에 유해하다. 연구는 4가지 유형의 화장품과 미세 플라스틱 혼합물, 합성한 땀 등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자외선 차단제와 보습제는 침출된 난연성 화학물질의 생체 접근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면, 제한제와 파운데이션은 브롬화 난연제의 침출량을 각각 20%와 10% 정도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3 매일 얼굴에 독을 바르고 있었다
그런데 화장품에 플라스틱이라니? 의아할 법도 하다. 그도 그럴 게 우리나라는 2017년 7월부터 세안제에 쓰이는 미세 플라스틱을 전면 금지했다. 그런데 여전히 세안제 외의 화장품에 들어가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남아 있다. 여성환경연대가 2019년 조사하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외 제품 중 미세 플라스틱 의심 성분이 포함된 립, 아이 메이크업 제품은 총 2만여 개”에 달한다. 2020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글리터류 화장품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화장품에 사용되는 글리터 중 상당수에 플라스틱 성분이 포함돼 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2022년 유럽 환경 단체에서 밝힌 보고서 ‘플라스틱: 숨어 있는 화장품의 미세 플라스틱 성분’에 따르면,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화장품 브랜드 10개 제품의 87%가 미세 플라스틱을 포함한다.

4 ‘미세 플라스틱’이 아닐 뿐
유엔환경계획(UNEP)이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화장품에 사용되는 미세 플라스틱 의심 성분은 22가지뿐이다. 이는 유럽연합 화학물질관리청(ECHA)에서 정의한 미세 플라스틱의 범주 때문이다. 나노 플라스틱, 수용성 플라스틱, 액상 플라스틱, 생분해성 폴리머 등은 모두 미세 플라스틱에 포함되지 않는다. 미세 플라스틱보다 작은 나노 플라스틱은 세포 장벽을 통과해서 뇌와 위장 등의 장기와 혈액에서 검출되거나, 태반을 뚫고 태아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생분해성 폴리머 역시 한번 축적되면 신체에 오래 잔류하며 미세 플라스틱과 같은 효과를 낸다. 보고서는 미세 플라스틱 규제로 인한 그린워싱도 염려한다. 나노 플라스틱이 포함될 가능성은 배제한 채 ‘미세 플라스틱 프리 화장품’ ‘생분해성 화장품’이라고 마케팅에 이용되는 현실 때문이다.

5 플라스틱 없이도 할 수 있어요
이에 화장품 업계에서는 ESG 경영의 일환으로 미세 플라스틱 대체 성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한국콜마에서 개발한 미세 플라스틱 대체 소재인 ‘실리카’다. 실리카는 피지 분비 조절과 모공 관리에 효과적인 미네랄 유래 성분이다. 화장품 성분이 덩어리지는 현상을 방지해 제품의 점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2021년 10월 한국화학연구원은 포항공대와 함께 게 껍데기에서 추출한 키토산 고분자를 활용한 생분해성 마이크로비즈 물질을 개발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도 식물성·생분해성 글리터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별도의 염료 없이 목재 펄프에서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필름 형태로 만들어 정제와 건조 과정을 반복한 뒤 착색시켜 작게 분쇄한 생분해성 글리터로, 기존 글리터 대비 에너지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6 오직 나를 위한 선택
제로 플라스틱을 말할 때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끼거나 유난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연구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 몸 세포의 생존 또는 사망, 세포 면역반응에 미치는 영향, 세포벽을 뚫는 능력, 세포 손상 수준, 세포 유전자 구조를 바꾸는 능력을 가졌다. 이런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몸에 미세 플라스틱이 어떻게 흡수되는지, 들어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불안은 이미 체내로 흡수된 미세 플라스틱을 어떻게 배출해야 할 지 알 수 없다는 거다. 해결 방안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길고 어려우며 지난할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지금 당장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줄여야 한다. 지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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