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 중독의 시그널
매일 밤 야식을 참지 못하는 것도, 간식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도 단지 의지가 부족해서일까? 습관과 중독 사이 과식을 멈출 수 없는 진짜 이유.
1 웰컴 투 과식 월드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음식은 큰 즐거움 중 하나. TV에도 유튜브에도 음식 관련 콘텐츠가 넘쳐남은 물론, 소문난 맛집은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음식에 진심인 나라다. 많이 먹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음식은 모자란 것보다 남는 게 낫다고 배우며 자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비만 인구가 늘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
이처럼 비만 인구가 급증하면서 비만도 질환에 포함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작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비만 환자 수는 2017년 1만4966명에서 2021년 3만170명으로, 최근 5년 사이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지속된 펜데믹의 영향으로 칼로리가 높은 인스턴트식품과 배달 음식 섭취량이 늘어난 반면, 활동량은 급격히 감소하며 비만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잘 알다시피 비만의 원인은 과식이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칼로리를 섭취하기 때문에 살이 찐다. 배가 부르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우리는 왜 먹는 걸 멈출 수 없는 걸까?
2 진짜 식욕과 가짜 식욕
식욕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진짜 식욕과 가짜 식욕이다. 진짜 식욕은 대사 활동에 필요한 열량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체온과 혈압, 혈당 등 기초대사를 유지하기 위한 열량을 충분히 섭취하면 뇌가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을 분비해 그만 먹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가짜 식욕의 목표는 단 하나, 쾌락이다. 가짜 식욕은 대사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충분한데도 음식을 계속 먹도록 유도한다. 밥을 배불리 먹고 나서도 디저트를 찾는 것, 허기와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간식을 먹는 것 모두 배가 아닌 ‘뇌’가 고픈 가짜 식욕의 영향이다.
3 습관일까 중독일까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뇌가 만족을 모르는 기관이라는 것. 음식을 섭취하면 쾌락 중추가 자극을 받아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분비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사실을 학습한 뇌는 음식=쾌락이라는 공식을 기억하고, 이후 스트레스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음식을 섭취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음식을 통해 쾌락을 얻는 사이클이 반복되면 뇌는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종국에는 중독과도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 처음에는 아이스크림 1개로 100% 쾌감을 느낀 사람이 나중에는 50%밖에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알코올이나 담배, 마약 중독이 작용하는 메커니즘과 동일하다.
섭식 중독을 공식적인 정신질환으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끊어내기 힘든 중독에 가까운 상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 최근 비만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며 중독적 섭식 패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중독적 섭식 습관을 지닌 사람에게서 갈망, 내성, 금단증상 등 중독 환자와 동일한 특성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면에서는 중독에 가까운 습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김희준 원장의 설명이다.
4 문제는 ‘음식 감수성’
우리가 폭식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음식 감수성’. 음식을 보고 식욕을 느끼는 음식 감수성이 섭식 중독과 비만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음식을 앞에 뒀을 때 비만 환자의 뇌는 정상인의 뇌보다 다양한 부위가 활성화된다. 그중 입과 입술, 혀의 감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경 부분의 활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독적 식이 패턴을 보이는 사람은 같은 음식을 두고도 정상적인 경우보다 식욕을 훨씬 강하게 느껴 폭식하게 된다.
5 DOCTOR’S ADVICE
섭식 중독의 가장 큰 특징은 혼자 힘으로 이겨내기 힘들다는 것. 반복되는 폭식으로 일상생활이 어렵고 금단증상까지 있다면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반드시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직 중독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일상생활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는 정도라면 식욕 일기를 써볼 것을 추천한다.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마다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어떤 감정과 생각이 폭식을 유발하는지 되짚어보면 섭식 중독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진 김태선
도움말 김희준(청주나비솔한의원)
참조 <살 빠지는 뇌>(구가야 아키라,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