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고 착해진, 뷰티 제국주의에 대하여!
우리가 찾은 건 ‘새로운’게 아니다. 뷰티를 위한 콜럼버스는 없다.

인류의 역사는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끊임없이 정벌하고 복종시킨 행위, 즉 ‘남의 땅을 빼앗아 차지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일찍이 서부 개척자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야만과 미개의 땅을 문명화한다는 사명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땅을 발견한 탐험가는 깃발을 꽂고 기념비를 세우는 상징적인 행위만으로 소유권을 선언했다. 원주민이나 다른 경쟁 국가가 다시 주장할 수 없도록 지도를 만들어 자신들의 땅임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복자들은 서로 앞다퉈 지도를 제작했다. 새로 발견한 땅의 동식물과 광물 등의 표본을 전시한 박물관, 박물지, 그리고 이런 이국적인 풍경을 묘사한 기록물과 기행 문학도 창조해냈다. 이러한 서적이 서구의 독자에게 새로운 간접경험을 안겨주고 그 땅을 통째로 소유하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2022년에도 여전히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 이미 형성돼 있던 단일민족 시대를 넘어 탈식민지 시대라는 현재에도 팔레스타인인, 그리스 마케도니아인, 이라크와 튀르키예 쿠르드족처럼 땅을 뺏겨 신음하는 민족이 여전히 많다. 전 세계 모든 국가에는 해당 지역만의 토착 식물이 있다.
그런데 그 땅의 원주민이 아닌 타국의 브랜드가 사업을 한다는 핑계를 앞세워 감시하고 통제한다면? 흔히 강대국 출신의 뷰티나 스킨케어 브랜드는 매 시즌 제품에 활용할 ‘트렌디한’ 성분을 찾기 위해 밤낮없다. 그들은 희귀하고 생소한 원료를 구하려고 늘 분주하게 움직인다. 소외된 문화권에서 구한 원료를 앞세워 이미지를 선점한 뒤 시장을 구축한다. 문제는 그런 브랜드가 제품의 성분을 위해 원료의 문화적 가치와 원주민 노동자의 권리를 완전히 깨뜨린다는 것. 서구 기업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는 해당 원료가 특별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도 은연중에 전파한다. 오직 서양 기술과 융합될 때만 가치 있다는 잘못된 상식까지 주입한다. 더 큰 문제는 모든 과정이 성분의 원산지와 원료의 배경이 완전히 배제된 채 널리 퍼지는 문화 삭제의 형태를 띤다는 것. 문화가 존중받지 못하면 문화에 귀속된 노동자의 인권 역시 존중받지 못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여전히 불법적이고 위험한 노동 관행이 지속되는 국가에서 공급되는 원료라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몇 푼 더 받아 풍요한 삶을 일구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며 인권의 문제다.
포용성, 지속가능성, 투명성, 단순히 ‘원료’뿐 아니라 원료가 생성되는 곳, 원료를 공급하는 사람까지. ‘윤리적 소비’가 결국 뷰티업계에도 잣대를 제시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 샤넬은 올 초 시대적 흐름에 맞춰 원료 생산부터 패키지까지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누메로 엉 드 샤넬’ 라인을 선보였다. 누메로 엉 드 샤넬 라인 제품의 주원료인 레드 까멜리아는 까멜리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프랑스 남서부의 고자크 지역에 위치한 샤넬 오픈-스카이 연구소에서 재배한다. 까멜리아 전문가인 장 토비와 전 세계 곳곳의 파트너를 연결해 찾아낸 까멜리아를 샤넬의 본국 프랑스에서 생산한다. 원산지 고유의 자연 속성을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살충제나 비료 등 화학물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데다 농업생태학과 산림생태학을 활용한 친환경적 재배 방식까지 적용했다. 대한민국 제주에서 발견한 ‘차르(Czar)’ 품종도 그중 하나. 이렇게 재배한 까멜리아는 꽃잎과 씨앗, 효모마저 모두 사용하고, 씨앗 껍질은 크림 제품의 캡을 만드는 데 쓰인다. 샤넬은 홈페이지를 통해 성분과 패키지, 제작, 생산, 유통, 사용 및 제품 수명을 분석한 탄소발자국 수치까지 공개한다. 가나의 스킨케어 브랜드 셰어 옐린(Shea Yeleen)은 시어버터를 재배하는 아프리카 여성 농민의 생활을 돕고 더 나은 작업 조건을 제공하는 데 수익금 일부를 기부한다. 아프리카 식물 재료로 스킨케어 제품을 만드는 54 쓰론즈(54 Thrones)와 멕시코계 미국인과 칠레계 미국인이 설립해 라틴아메리카 재료인 퀴노아, 치아, 마테 등을 사용하는 클린 스킨케어 브랜드 바미가스(Vamigas) 역시 원료의 생산지와 문화적 배경에 대해 상기시킨다. 나아가 위험한 환경에서 재료를 생산하는 농민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국내에도 원료의 유통과 생산에 따른 식민지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브랜드가 나타났다. 국내 최초로 국제공정무역기구의 인증을 받으며 생산지와 농민, 아동, 환경까지 고려한 브랜드 ‘카라멜리’다. 최근 설탕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건강에 대한 염려로 전 세계 설탕 소비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브랜드에서는 설탕 소비 감소로 제조 단가를 낮추었고, 설탕 농가에 그 부담을 전가했다. 주로 제삼세계 여러 나라의 사탕수수 농가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평균 14시간 일해 1달러 정도 버는 어린아이들이다. 이런 현실을 규탄한 카라멜리는 공정하고 지속적인 방법으로 설탕 소비 방법을 찾아냈다. 정제하지 않은 사탕수수는 캐러멜라이즈 공법을 이용해 화장품으로, 사탕수수 부산물은 포장재로 재탄생시키며 소비자의 주목을 받았다. 다른 산업이 그렇듯 코스메틱 산업 역시 문화적 유용에 책임감을 갖는다. 원료를 생산하는 경작지를 소유한다는 이유로 기존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경은 지워버린 채 새로운 원료를 더욱 가치 있게 이용한다는 식의 마케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재활용한 원료나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폐기물을 최소화하거나 지속가능한 포장과 리필 포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제품의 원료가 ‘클린’한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재료를 수확하고 조달하는 과정 역시 ‘클린’해야 한다. 이제 더는 자본으로 타국을 착취할 수 없다.
일러스트 김원준